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현구 임나일본부설 주장 날조 사건 (문단 편집) === [[진구 황후]]와 관련된 년도를 [[이주갑인상]]하는 것은 "일본서기를 억지로 진실"이라 주장하는 행위이다? === [[https://namu.wiki/w/%EA%B9%80%ED%98%84%EA%B5%AC?rev=92#s-5.2.1| 해당주장]] [[https://namu.wiki/topic/13266|해당 주장에서 생겨난 토론]] 이 주장의 논리를 정리하면 이렇다. >'[[진구 황후]]와 관련된 년도를 [[이주갑인상]]하는 것은 임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.' → '이 임의적인 해석은 "일본서기를 어떻게해서라도 사실로 만드는 것"이다. → '이것은 임나일본부설을 기다리는 행위다'는 것이다. 그러나 [[이주갑인상]]문서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. 왜국 관계자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앞당기위해 년도를 길게 끌어 올렸고, 3세기 ~ 4세기 사이의 백제 등 외국 관련 기록에선 2갑자(120년) 끌어 올려진 부분이 존재한다 것은 이미 밝혀진 것이며 그건 [[진구 황후]]라는 가상의 인물이 존재하는 시대와 관련된 것이다. [[일본서기]]는 근초고왕의 붕어와 근구수왕의 즉위를 254년/255년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[[삼국사기]]는 이를 375년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에 약 120년의 차이가 발생한다. 그런데 [[삼국사기]]의 기록이 정확하니 결국 일본서기는 120년을 앞당겼다는 것이 밝혀졌다. 물론 여기서 120년이 앞당겨졌다는 건 "모든 사건"이라거나 "100%정확"이라는 뜻은 아니다. 김현구 교수가 [[이주갑인상]]을 해서 가설을 세운 행위는 '''일본서기 완전 진사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며''', 김현구 교수 본인은 "'''[[근초고왕]]이 벌인 정벌을 [[왜]]가 한 것이라고 일본서기는 조작했다.'''"는 주장을 한다. >일본이 임나를 중심으로 백제와 신라까지도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출발점이 되는 기사가 『일본서기』369년의 기록이다. 『백제기』를 원용한 369년 기록……이 기록의 요지는 일본이 신라를 격파하고, 가야7국을 평정한 다음 [[침미다례]](강진)를 취해서 백제에게 주자, 백제왕이 영원히 일본의 서번이 될 것을 맹세했다는 것이다. 따라서 이 기록은 일본이 임나(가야)지역을 중심으로 신라 백제까지도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. 그리고 그 내용중에서도 이 때부터 200년 가까이 지배하게 되었다는 가야7국에 대한 평정이 임나 문제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. 그런데 가야7국을 평정한 중심인물인 목라근자가 분주에는 '''백제의 장군이라고 명시되어 있다'''. 분주에서는 목라근자의 성을 알 수 없다고 했으나, '''당시 백제에는 목(木)이라는 유력한 성씨가 존재했고 일본에는 '목(木)'이나 '목라(木羅)'라는 성씨가 존재하지 않았다. 따라서 가야7국을 평정한 중심인물인 목라근자는 백제 장군이 분명'''하다. 가야7국을 정벌한 작전을 보면, 탁순, 즉 대구에서 시작하여 가야7국을 평정하면서 한반도의 남해안을 서진한 백제장군 목라근자와 백제의 수도 한성에서 서남쪽을 향하여 남하한 근초고왕과 왕자 귀수의 군대가 고해진(강진)에서 만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. 그 결과 양군에 둘러싸인 형태가 된 비리 벽중 포미지 반고 등 구 마한 지역이 자연히 항복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. 따라서 '''목라근자와 근초고왕이 중심이 된 이 작전은 전체적으로 구 마한지역에 대한 백제의 작전'''임을 알 수 있다. 그리고 가야7국을 평정한 주체가 일본이라면 작전은 일본에서 도착하는 한반도의 남해안에서 개시되어야 할 것이다. 그러나 '''목라근자가 중심이 되어서 진행한 작전은 내륙인 대구에서 출발하고 있다. 대구는 백제가 가야7국을 평정하는 집겹지는 될 수 있지만, 왜군이 가야7국을 평정하는 집결지는 될 수 없는 곳'''이다. 또 가야7국 평정의 주체가 일본이 아니고 백제라는 사실은 '''목라근자 등이 "남만 침미다례"를 취해서 백제에게 주었다는 표현'''으로도 알 수 있다."남만 침미다례"에서 ''''남만'은 '침미다례'의 방향을 표시하는 말인데, 침미다례는 백제의 입장에서 본 다면 '남만'이 되지만, 일본의 입장에서 본다면 '서만'이 된다.''' 이로써 침미다례나 가야7국을 평정한 주체는 백제였음을 알 수 있다. '남만'이라는 표현은 가야7국 평정의 주체를 일본으로 '''바꿔 쓰면서 부주의로 남겨놓은 하느님의 선물'''이었던 것이다. '''역사를 완벽하게 날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.'''-김현구, 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, 2002, 창비, 56~61쪽 '김현구 교수 임나일본부학자설', '김현구 교수, 일본서기 완전 진사론 학자설'을 주장하는 사람중에서 "백제의 가야정벌설이 근거가 없다"는 점을 들어 논점을 돌리려는 사람도 있다. 그러나 이 가설을 비판하는 것과, 김현구 교수가 "임나일본부설을 주장했다"는 논점이 다른 이야기다. [[6.25 전쟁]] 논쟁을 예로 들어보자. 정통주의자들 중에서도 "소련 모르게 김일성이 침략해서 [[스탈린]]이 당황했다"는 '소련경악설'을 주장한 사람이 있다. 이런 주장들은 소련문서 공개후엔 폐기됐다. 그러나 이 [[가설]]이 사실이 아니라는 게 곧 이 전통주의자들이 [[공산주의]], [[스탈린주의]]라는 걸 뜻하는 것 아니다. "백제의 가야정벌설"이 틀렸다고 해도 그게 곧 [[임나일본부설]] 학자를 뜻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